코요태 빽가가 8월 15일 유튜브 채널 '빽가언니'에서 자신의 외증조부가 임시정부를 뒷받침한 독립운동가 진희창 선생이라고 처음 밝혔다. 20년 넘게 같은 팀 멤버에게도 숨긴 이유는 조상의 업적에 얹혀가고 싶지 않아서였고, 공개한 이유는 어려운 독립운동가 후손을 돕기 위해서였다. 자랑이 아니라 지원의 계기로 가족사를 꺼냈다는 점이 이번 고백의 핵심이니, 화제성만으로 소비할 이야기가 아니다.
코요태 빽가가 8월 1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빽가언니'에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그는 이 영상에서 외증조부가 독립운동가 경림 진희창 선생이라고 밝혔다.
공개 시점이 광복절이라는 점, 그리고 형식이 소속사 보도자료가 아니라 본인 유튜브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무대 위 예능 캐릭터로 익숙한 인물이 개인 채널에서 가족사를 직접 말한 셈이다.

Derek Tsai
진희창 선생은 1874년에 태어나 상하이에서 전차회사 감독으로 일하다 독립운동에 뛰어든 인물이다. 경술국치 이후 1911년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력의 무게는 임시정부 초기 기록에 그대로 남아 있다. 1919년 4월 10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열린 임시의정원에 이동녕, 신익희 등과 함께 의원으로 참석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민주공화제를 정하던 바로 그 자리다.
이후에는 임시정부의 재정과 운영을 뒷받침했다. 무장 투쟁이나 의열 활동만이 독립운동은 아니었다. 조직을 유지하려면 돈과 살림을 챙기는 사람이 필요했고, 진희창 선생은 그 자리를 맡은 축이었다. 1920년 상하이 대한인거류민단 설립에 참여해 의사원으로 활동했고, 교민 자녀를 가르치던 민성학교도 지원했다. 광복은 보지 못한 채 1933년 2월 상하이에서 순국했고, 정부는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빽가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하권에 진희창 선생의 이름이 나온다고도 전했다. 김구를 가까이서 도운 동지로 언급된다는 것이다.
놀라운 대목은 침묵의 길이다. 빽가는 20년 넘게 함께 활동한 코요태 멤버들에게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다고 했다.
이유는 스스로 밝혔다. 외증조부의 이름을 꺼내는 순간 그 업적에 얹혀가는 느낌이 들까 봐 조심스러웠다는 것이다. 자랑거리로 삼기에는 그 헌신이 너무 크고 무거웠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 빽가는 예전부터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산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고, 도움이 필요한 후손이 있다면 돕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냈다고 설명했다. 가족사 공개가 목적이 아니라 지원의 계기가 목적이었다는 뜻이다.
연예계에서 독립운동가와 얽힌 가족사가 알려진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말에는 안중근 의사의 후손인 이첸(본명 김영선)이 오디션을 거쳐 아이돌 그룹 모디세이로 데뷔하며 화제가 됐다.
다만 결이 다르다. 이첸의 경우 후손이라는 배경이 데뷔 서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알려졌다면, 빽가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뒤에도 오래 감췄다가 특정 목적을 위해 스스로 공개했다.
두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판단 기준이 하나 생긴다.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사실 자체보다, 그 사실을 어떤 맥락에서 어떤 목적으로 꺼내느냐가 이야기의 무게를 정한다는 점이다. 빽가의 고백을 단순한 미담이나 화제성으로만 소비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남은 관심은 실행이다. 후손 지원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갈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번 공개가 한 번의 화제로 끝날지, 실제 지원으로 이어질지는 앞으로 확인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