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준은 1997년 〈가위〉로 데뷔해 '아름다운 청년' 이미지로 톱스타에 오른 가수였다. 병역을 다하겠다 공언하다 2002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출입국관리법 11조에 따라 24년째 입국이 막혀 있다. 2026년 10월 세 번째 비자 소송 2심에서 이겼지만, 비자 거부 취소는 입국 허용과 별개여서 실제 입국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2026년 10월 2일 서울고등법원은 유승준이 낸 세 번째 비자 소송 2심에서 그의 손을 들어줬다. LA 총영사관의 항소를 기각하고, 비자 발급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겼다는 소식에도 그가 한국 땅을 밟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왜 이런 일이 20년 넘게 반복되는지 이해하려면 가수 시절부터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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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은 1997년 1집 《West Side》로 데뷔했다. 타이틀곡 〈가위〉는 몇 달 만에 가요 순위 1위에 올랐고, 신인치고 이례적으로 빠르게 톱스타가 됐다.
이후 2집 《For Sale》의 〈나나나〉, 3집 《Now Or Never》의 〈열정〉 등으로 히트를 이어갔다. 2002년 초까지 정규 음반 여섯 장을 냈으니, 당시 기준으로는 쉴 틈 없이 달린 셈이다.
그를 단순한 댄스 가수와 구분 지은 건 이미지였다. 성실하고 반듯하다는 평가에 더해, 병역을 피하지 않고 다녀오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하면서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이 대목이 이후 논란의 크기를 결정한다.
유승준은 2001년 말 입영을 연기하고 공연 일정을 이유로 미국으로 나갔다. 병무청은 일정이 끝나면 귀국하겠다는 각서를 받고 출국을 승인했다.
그러나 2002년 초, 입대를 앞둔 시점에 그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미국 시민이 되면 병역 의무가 사라진다. 병역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던 사람이 입대 직전 국적을 바꾼 것이라, 반발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섰다.
정부는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사람의 입국을 금지한다'는 출입국관리법 11조를 근거로 그의 입국을 막았다. 이 조치가 지금까지 이어지며 24년째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입국금지 자체를 다투기는 어려워, 유승준은 비자를 받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15년 재외동포(F-4)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고,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면서 승소가 확정됐다.
문제는 그 뒤였다. 법원이 거부가 위법하다고 해도, 영사관이 다시 비자를 거부하면 원점으로 돌아간다. LA 총영사관은 2024년 6월 또 비자를 거부했고, 유승준은 2024년 9월 세 번째 소송을 냈다. 이번 2심은 그 소송의 결과다.
재판부는 20년 넘게 입국이 제한된 점 등을 들어, 거부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봤다. 입국금지로 얻는 공익보다 당사자가 입는 불이익이 더 크다는 취지다.
여기서 많이 헷갈리는 지점이 있다. 비자 소송에서 이겼다는 건 '비자 발급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는 뜻이지, '입국을 허용하라'는 판결이 아니다. 두 절차는 분리돼 있다.
실제로 재판부도 이번 판결이 그의 과거 행위가 적절했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거부 처분이 취소돼도 영사관이 다른 사유로 다시 거부할 여지가 남아 있고, 그동안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정리하면, 가수로서의 인기와 '아름다운 청년' 이미지가 컸던 만큼 신뢰가 무너진 대가도 길게 이어지고 있다. 법원에서 이겼다는 뉴스가 곧 입국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만 구분해도, 앞으로 비슷한 기사가 나올 때 혼동을 줄일 수 있다.